주일말씀 빌2:1-4
겸손을 잃어버린 세상
김경진 목사님

[빌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아리스토텔레스
온유와 겸손, 온유는 모자람, 화를 낼 줄 모름. 따라서 비난 받을 태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시간 동안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칭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오히려 모자람 쪽에 더 치우치는 듯합니다... 적절한 경우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바보로 여겨지고...
그러한 사람은
지각이나 고통 감각이 없는 듯하며, 분노에 대한 무감각으로 인해 자신을 방어할 마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4권 5장, 1-3)
그는 말한다.
겸손은 남에게 짚밟힌다. 겸손하지 말라.
이것이 예수님 시대 전후의 문화, 전쟁의 문화였다.
그들의 롤모델은 영웅들이었다.
지금도 그러한 태도는 남아있는 듯하다.
온유하면 약해보이는 것. 이것이 지금의 문화.
분노하지 않으면 모자라게 여겨지는 오늘의
문화.
전쟁터에서 온유는 필요가 없겠다.
지금 세상은 싸움터, 겸손과 온유를 모르는 세상, 내동댕이 친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야 할까.
예수님은 온유함과 겸손에 대해 수없이 말씀하시고 이것이 열쇠임을 말씀하신다.
[마11:28-29]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이 참된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
분노를 부추기며 투쟁을 요청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온유와 겸손을 말씀하신 이유
1.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
2.온유와 겸손이 진정한 가치로 인정받는 세상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
겸손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할 수 없다. 열등감을 가진 사람도 겸손할 수 없다.
겸손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
빌립보 교회에도 시기하는 세력이 있었다.
[빌2:1, 새번역]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하나님을 하는 모든 성도가 어떤 일을 하든지”
[빌2:2-3]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하라”
Tapeinos 낮은 phren 마음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것. 자존감으로 가득하되 부족함이 없지만 스스로 내려가 남에게 배우려 하는 것. 열린 자세.
오늘날 실종된 겸손의 마음. 남을 낫게 여기고 배우려는 마음이 없다. 분노와 비난과 정죄만 가득하다.
통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로 배우고 서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나부터 내려와야 한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 하는 사람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에 근거하여야 한다.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한마음 한 뜻이 되라. 분열해서는 안된다.
같은 마음이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혼란의 때 우리는 오히려 한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자기를 비우는 마음, 종의 형체를 빌어 오신, 낮은 곳에 내려오셔서, 끝까지 복종하시거 죽임당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겸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겸손을 보이신 예수님.
반드시 해야 할 것, 기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겸손히 주님께 엎드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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